남루한 인격이 지배하는 집단에서

분명 자유 복장이라고 했는데, 자유 복장이 허용되지 않는 이상한 회사에서 일했었다.

입사 후 얼마 안 가, 포화 상태의 업무량에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어느 하루, 어떤 여직원은 암묵적으로 나에게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고 다닐 것을 종용했다. 눈치를 채고, 나는 보풀 제거기를 샀다.

 

의사를 상대로 세일즈를 하는 이 회사의 영업 사원들은 모두 차려 입는다. 영업 사원은 영업 사원의 테를 숨기지 못한다. 바싹 정신 차려야 하는 업무이리라. 긴장에 지친 날숨을 숨기지 못한다.

 한 여성 영업사원이 말했다. 깔깔 거리는 흥겨움도 잠시, 볼멘소리로 상사가 짧은 치마 입지 말라 했다고 한다. 서른 즈음의 사원은 한참 젊었으나, 알 수 없는 위험 속에 있는 듯 했다. 사회적, 성적 권력의 압도적인 상하 구도에서 그 여성이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눈치 채고 말았다. 실적이 좋은 여직원과 그 여직원의 드레스 코드마저 단속하려 드는 상사.

 그 권력 구도가 사무실에서도 이어진 것이었다.

사무직원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영업 사원 위에 묘하게 군림하는 야릇한 구도. 정규직 직원도 해내지 못하는 업무를 하는, 그 회사의 파견직 사원은 먹이사슬의 제일 끝이었다.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상의 3벌과 하의 3벌 정도를 번갈아 세탁했다. 그 마저도 데님팬츠와 리넨 셔츠 정도. ‘가난해’ 보였으리라. 다만, 표정만은 밝게 유지하려 애썼다. 밀려드는 업무가 손에 익을 만 하면, 시키는 일들. 정신을 초인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그 날 일을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점점 더 응축되고 예민해져 갔다. 4개 부서의 일을 어시스트하면서, 그 지사의 전 지출 사항 지급을 담당하며 대체로 나는 실수 하나 없었다. 그 해, 워크샵에서는 나에게 5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상을 하나 수여했다.

 

내가 해내는 것들에 감탄하면서도 그 사람들에게 어떤, 악의같은 것이 떠오르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를 견제하려 들고 만 사무실의 실세들까지 모의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는 식의 거짓, 주관적인 평가와 ‘근무 의욕’이라는 문항이 반영된 근무평가서… 해명의 기회도, 사내에 해명의 틀도 없었던 권고사직.

 

옷을 샀다. 좋은 옷, 보기 좋은 옷, 예쁜 옷, 기분 좋은 옷을 걸치자 일단 나를 찾은 것 같아 안도했다. 오래 전 들었던 가사가 떠올랐다.

 

“No one’s as fly as me, I’m so fresh and so clean.”

“So Fresh, So Clean” by OutKast from Stankonia, 2000.

 

자존감을 옷차림 따위의 외모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유년이 있었다. 취향 껏 좋아하는 브랜드와 소품을 즐겼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았다. “Without a Prejudice”. 여고 3층 복도에 누군가, 학교 선배의 그림을 나는 에칭(etching)으로 기억한다.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여고생은 20년을 더 살아내고, 겨우, 그 선언에 ‘하나’를 더했다. 조금 더 현명해 졌다.

 

점쟁이도 아니고 누가 외모로 사람을 알아낼 수 있는 가 마는, 외모로 분명히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나는 그것을 애써 감춰왔다. 오만 것이 소비되는 이 세상에서, 관통하는 능력을 획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열(破裂)된 것 같았다. 침묵한 채, 제 3의 눈을 성취할 것인가. 이제는, 아니.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도 어필하지 못한 실패, 더 이상 진전의 여지가 부재한 상태이자, 관계의 폐색(閉塞) 상태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적어도, 공기가 순환되는 곳에서 숨을 쉬고 맞이하자. 입고 사는 것이, 선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를 피력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므로, 적극적으로 동원하겠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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