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식사법이 ‘자극’(irritation)이 되는 집단

식사. 먹는 일(食事)이라 적는다. 먹는 것이 ‘일’이었던 시절에서 차고 넘치는 현재다. 우리 집은 특별한 날에만 외식했다. 아버지가 판단한 특별한 날. 그 특별한 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당신 속을 알 수는 없지만. 외식을 자주 하는 다른 집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미안해했다. 대신 아버지는 손수 음식을 만들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우리 집 식구들은, 특히 그와 닮은 나는 그 음식에 길들었다.

먹는 일에 투정을 부리는 것에는 엄격한 교육을 받은 나는, 먹는 일에 까다롭지 않았지만, 맛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있었다. 한 번도 티 낸 적은 없었다. 주는 음식은 감사히, 맛있게 먹는 것이 예의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나날들이 있었다. 식사 관리의 필요를 처음, 느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는 거친 음식과 콩류 섭취, 그리고 알코올 섭취의 자제, 노년의 육류(단백질) 섭취 권장, 무엇보다 단순당과 정제 곡물의 제한을 강조하는 식사법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여느 할리우드 스타들의 현란한 식이요법이나, 굉장히 세분화된 정보들이 어려웠던 일본식 식사법들보다 직관적이고, ‘인스턴트’(단당류)가 주를 이루는 요즘의 핵심을 관통하는 식사법이라고, 나는 의심치 않는다.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먹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 동안, 나같은 사람도 상당한 양의 당을 섭취했다. 조금씩 주전부리만 줄여나간 것이, 소식이 편한 체질이 되었다. 라면은 1년에 두어 번 정도 먹어도 즐거웠고, 그 시간동안 음식에 대한 통찰 같은 것을 얻은 것 같았다. 조금 까다로워져도 좋았다.

질 좋은 음식은 중요하고, 식사예절을 아우르는 식사 ‘환경’은 질 좋은 음식을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와인을 보틀로 사서 마셔본 적 없더라. 정 교수님께서는 와인도 알코올로 분류하셨고, 와인 많이 마시는 프랑스 사람들은 야채 섭취가 그만큼 상당하기 때문에, 알코올의 해로움이 상쇄되는 거라고 하셨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리도 절제했고, 불면에 시달렸고, 몇 해 동안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던 어느 날,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나쁘지 않은 프랑스 와인 한 병을 샀다. 그 동안의 전혀 단순하지 않았던 절제에 대한 보상처럼. 여느 때는 일 마치고, 보드카나 위스키 한 잔 정도 가벼이 즐길 줄 알았던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건, 알코올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다.

먹고 사는 일이 다 같은 줄만 알았던, 가까운 과거에의 각성이다. 함께 모여 먹는 자리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어떤 부류들의 대화 주제는, 대체로 사람을 소비하는(먹는) 내용이다. 나는 지금까지는, 그것을 학습의 때를 놓쳐,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기 어려운 이들의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 ‘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두어 명은 그 식사 자리에서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그런 자리는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자리가 성적 구도로 확장되는 것마저 목격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 굶주림에 권력마저 부여했나!

라면을 먹지 않는다가 아니었다. 좋아하던 라면을 줄였다, 가 요지였다. 그것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경계(境界)가 없었다. (『과잉존재』, 김곡)

고달프지만, ‘한결같은 노동인들은 건강할 줄 알았다.

먹는 일은 생존을 위한 일이며, 눈물 나게 숭고하다. 이 치열함에 나는 ‘아직도’ 끼니를 굶는 아이들에게 손길이 닿아야 한다, 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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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유라는, 쉬움의 위험